여행/2005 나고야 도쿄 도야마

한일커플 일본여행10 - 한국은 살기 안전한 곳 입니다.

도꾸리 2008. 3.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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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야마 인근 해변. 우중충한 하늘. 심란한 우리의 마음.

6시쯤 알펜루트에서 돌아왔습니다. 한여름에 만끽하는 설원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약간 추위에 몸을 떨었더니 집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따뜻한 아랫목 생각이 말입니다. 한겨울에 온돌이 이렇게 그리울 때도 있네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마키 가족들과 함께 텔레비전도 보고 담소도 나누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눈치를 계속 살피던 마키는 가족들에게 잠시 모여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앞으로의 우리 삶에 대한 토론을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마키의 몫입니다. 제가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마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제까지 만남에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까지.

식사하기 전에 마키는 내게 30분이면 끝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좋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거의 2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것도 아무 말 없이 2시간 동안 옆에 내가 앉아만 있는 것이 무안하셨는지 일찍 올려 보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마키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할머니도 같이 우셨고요.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아버님은 말없이 근엄한 표정만 지으시고, 할머니는 채근하시는 듯한 말투로 계속 마키에게 이야기를 하시고, 어머니도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시지 못하시고 연방 울음만 터트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가족들 모두 웃음을 짓더군요. 급기야 다들 크게 웃기까지 하구요. 그제야 저의 마음도 조금 편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다들 웃는 모습이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시는 듯한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우리의 결혼에 대해서 부모님께서는 조금은 시간을 가져보기를 마키에게 권했다고, 나중에 마키가 전해 주었습니다.

마키는 6년째 해외에서 생활 중입니다. 3년은 호주에서 대학원을 마치기 위해, 3년은 타이 방콕에서 일본 회사에 근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집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을 말이죠. 6년도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랫동안 자신의 딸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마키가 그 기간 동안 일본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명절 때나 휴가 기간이면 어김없이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호주에서 일본으로 돌아와서 방콕에 가기까지 한동안 일본에서 머물러 있기도 했고요. 또한, 한국에 산다고 부모님을 못 뵙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자주 왕래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결혼을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또한, NHK를 통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계신 할머니는 한국이 전쟁 가능성이 매우 큰 곳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NHK에서 북한의 남한에 대한 도발 가능성이 날로 고조되어 간다는 뉴스를 언젠가 들으시고는 말이죠. 이런 이유로 할머니께서도 우리 결혼에 대해서 조금 시간을 두자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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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터면 마지막이 될 뻔한 사진. 그래도 밝게 웃어주어서 고마웠다.

마키와 새벽녘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인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갔습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지나자 바다가 보였습니다. 끝없이 보이는 수평선, 정박해 있는 고깃배,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지난 저녁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날려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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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지역 해산물. 좌측이 오징어 먹물로 만든 과자. 우측이 말린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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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 박물관 내벽에 붙어있던 포스터. 관공서에 전라의 사진이 붙어 있음에 놀랐다. 사진2 : 여자 화장실 뿐만 아니라 남자 화장실에서도 아기 기저귀 갈 수 있다는 표지판이 있네요.

근처 해양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마키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초밥집이 있다고 해서 장소는 그곳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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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야마에서 먹은 초밥.

일반 회전초밥집과는 다르게 상당히 가격이 비쌌습니다. 오또로(참치 대뱃살) 한 점에 800엔이나 했으니까요. 입만 즐거웠습니다. 교토에서 값싼 음식에만 익숙해 있다가 말입니다.

마키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선물을 사러 이곳저곳에 다니다 집에 7시쯤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2층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위험한 도시가 아니다, 마키가 한국에 가도 자주 찾아오겠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연유에선지 마키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9시가 넘고, 10시가 넘고, 급기야 11시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키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내려갈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올라오지 않는 것을 봐서 분명히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텐데, 알아 듣지도 못하는 주제에(?) 옆자리에 앉아 있기가 민망했습니다. 마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싫어지더군요.

결국, 마키는 11시 30분이 넘어서야 왔습니다. 애써 웃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화를 내버렸네요. 왜 혼자 갔느냐고, 2층에서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는지 아냐고 말입니다. 마키는 그런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가족들과의 대화 속에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제가 화를 내서 말이죠.

마키는 혼자서 가족들과의 장장 3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전날 반복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것에 반대하는 가족에 대해서 마키는 실망을 했고, 가족들 또한 가족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마키가 못내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결국에는 어머니께서 마음대로 하라며 자리를 뜨시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대화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이면 도야마를 떠나야 합니다. 다시 나고야로 이동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늦은 새벽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양한 가능성과 그에 걸맞은 여러 해결 방안. 하지만, 모두 머릿속 생각들뿐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의 뜬눈으로 날을 새고 새벽 6시에 집을 나왔습니다. 도야마에서 나고야 가는 버스를 예매해 놓았기 때문에, 집에서 늦어도 6시에는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아버님과 할머니는 주무시는지 안보이셨고, 어머니와는 어색한 눈인사만 하고 나왔습니다.

나고야행 버스에서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가족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 결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은 마키였습니다. 그런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지금이야 반대를 하시지만 나중에 우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우리들의 삶 또한 인정해 주실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본여행은 마치게 되었네요.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한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적어도 한국에 돌아와 일본에서 온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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